한 번 더 헤아리는 마음
한 번 더 헤아리는 마음
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다 보면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이름을 만난다. ADHD, 경계선 지능, 불안. 그 이름 덕분에 이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행동을 이해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지원을 찾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그 이름을 알고 난 뒤부터 아이에 대해 더 궁금해하지 않게 되는 순간도 있다.
아이를 지도하는 어려움이 커질수록 우리는 진단명으로 아이를 설명하고 싶어진다. “ADHD라서 그래요.” “인지가 낮아서 어려워요.” 그렇게 말하고 나면 조금은 이해한 것 같고, 막막했던 상황에도 이유가 생긴다. 하지만 그 설명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는 잘하는지, 어떤 도움을 받으면 달라지는지는 뒤로 밀리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순간이 있다.
같은 ADHD를 가진 아이들도 만나보면 참 다르다. 기질과 성격,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어려움이 나타나는 모습도 다르다. 어떤 아이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어떤 아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말로 설명하면 어려워하던 아이가 직접 해보면 금방 배우기도 하고, 혼자서는 하지 못하던 일을 누군가 곁에 있어주면 해내기도 한다.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비슷해도, 아이가 가진 자원과 강점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아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이에게 붙은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 그 아이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생각에 드는 수고를 줄이려는 경향을 ‘인지적 구두쇠’라고 부른다. 복잡한 사정을 하나씩 살펴보기보다 익숙한 범주에 넣으면 판단이 빨라진다. 바쁜 일상에서 모든 사람과 상황을 충분히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렇게 내린 판단이 너무 쉽게 확신이 된다는 데 있다. 한 번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말이 계속 까다롭게 들리고, 의욕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면 잠깐의 망설임도 의욕 부족으로 보인다.
나는 종종 헷갈린다. 편견으로 상대를 바라본 내 눈이 잘못된 것인지, 그동안 쌓인 삶의 경험으로 어떤 특징을 기민하게 포착한 것인지. 경험을 통해 알아차리는 것들도 분명 있다. 그렇다고 내 경험이 늘 정확한 것은 아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는 이유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까지 다 안다고 여길 수는 없다. 그래서 처음 든 생각을 잠시 붙잡아두고, 다른 모습도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물론 이런 노력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쌓이면 아이를 충분히 이해하는 과정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빠르게 판단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라는 요구 속에서, 한 사람을 오래 궁금해하는 일은 쉽게 뒤로 밀린다. 서로를 성급하게 판단하는 태도를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에게는 한 번 더 물어보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데에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한 번 더 헤아리는 일은 관심을 더 주는 일이고, 쉽게 납득되지 않는 모습에도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미 내린 판단을 바꾸려면 수고가 든다. 그 수고를 감수하게 하는 마음에 너그러움과 애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불편한 것도 많고 거슬리는 사람도 많다. 상담교사라고 해서 사람을 언제나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상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닫고, 더 알아보고 싶지 않기도 하다.
다만 불편한 마음이 든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려 한다. 내가 보지 못한 모습이 있을 수 있고,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거리를 두어야 하는 관계에서도 그 사람 전체를 함부로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기르고 싶은 힘은 그 지점에 있다. 잘 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한 번 더 궁금해하는 것. 아이의 어려움을 들은 뒤에도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것. 마음이 닫히려 할 때 내가 놓친 사정은 없는지 돌아보는 것.
사람을 한 번 더 헤아리고 배려하는 사람을 보면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아직 내가 모르는 모습이 남아 있음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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