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는 원래 이런 아이예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상담교사가 아이와 선생님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
초등학교 상담교사로 근무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선생님, 이 학생은 왜 이럴까요?”
“몇 번을 이야기해도 똑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이제는 저도 얘한테 좋은 마음이 안 들어요.”
처음 상담교사가 되었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왜 아이를 문제로만 바라보실까?’
‘조금만 다르게 봐주시면 좋을 텐데.’
그런데 학교에서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함께 만나다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담임선생님이 한 아이의 부정적인 모습을 반복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때로는 그만큼 오래 애써왔고 이제는 많이 지쳐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같은 교실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마주하고, 여러 번 이야기하고 기다려주었는데도 달라지지 않는 경험이 쌓이면 누구라도 아이의 가능성보다 문제에 시선이 머물기 쉽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왜 아이를 이렇게 보실까?’보다 먼저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정말 많이 힘드셨겠구나.’
그리고 바로 그때, 상담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직접 변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시선이 너무 단단하게 굳어지지 않도록 돕는 것.
저는 이런 상황에서 몇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1. 아이보다 먼저, 선생님의 힘듦을 들어드립니다
“그래도 ○○이가 좋은 점도 있잖아요.”
저는 이 말을 너무 빨리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미 오랫동안 아이 때문에 힘들었던 선생님에게는 이 말이
‘선생님이 조금 더 이해해주세요’라는 또 하나의 요구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먼저 충분히 듣습니다.
“그 상황이 계속 반복됐으면 정말 힘드셨겠어요.”
“계속 지도하셨는데 또 그러면 지치실 만해요.”
“요즘은 ○○이만 보면 긴장되실 것 같아요.”
아이의 행동을 옹호하지 않으면서도
그 행동을 매일 감당하고 있는 선생님의 어려움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자신의 힘듦을 충분히 이해받았다고 느끼면
그다음부터 아이의 이야기를 조금 더 여유롭게 들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 관계가 너무 나빠졌다면,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담임선생님과 아이의 관계가 이미 너무 많이 소진되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하기 전부터 선생님은 긴장하고,
선생님의 작은 말에도 아이는 방어적으로 반응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더 열심히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더 지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선생님께 말씀드리기도 합니다.
“선생님, 지금은 ○○이를 꼭 변화시키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상담실에서도 같이 만나볼 테니 선생님은 조금 내려놓으셔도 괜찮아요.”
물론 담임교사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지도까지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반드시 이 아이를 바꿔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잠시 벗어나도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가 가까워져야만 좋은 관계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더 주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어른에게 도움을 나누는 것도 좋은 개입이 될 수 있습니다.
3. 아이의 좋은 모습을 ‘설득하지 않고’ 흘려줍니다
상담실에서는 교실에서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교실에서는 공격적이던 아이가 상담실에서는 동생 이야기를 하며 한없이 다정하기도 하고,
수업시간에는 산만하던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발견하면 저는 담임선생님께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오늘 ○○이랑 이야기하다가 의외의 모습을 봤어요.”
“○○이가 친구들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친구들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선생님 말씀 듣고 상담해봤는데요. ○○이가 그때 자기도 미안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선생님이 이 아이를 잘못 보고 계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아직 보지 못한 아이의 한 조각을 슬쩍 건네드리는 것입니다.
그 작은 정보들이 쌓이다 보면
‘문제 많은 아이’였던 아이가
‘문제행동도 하지만 이런 면도 있는 아이’로 조금씩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4.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각도’를 하나 더 보여드립니다
아이의 행동에는 때때로 교실에서만 보아서는 알기 어려운 맥락이 있습니다.
가족관계가 불안정할 수도 있고,
학습이 너무 어려워 수업시간마다 실패를 경험하고 있을 수도 있고,
친구에게 거절당할까 두려워 먼저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 이런 맥락을 알게 되었다면 개인정보와 상담의 비밀보장 범위를 지키면서, 교사가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관점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일부러 수업을 방해하려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한테는 이 시간이 굉장히 어려운 시간일 수도 있겠어요.”
“친구한테 관심이 없어서 저러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친구 관계에 굉장히 예민한 아이더라고요.”
이런 설명 하나가 문제행동을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려고 저러는 아이’에서
‘저 아이에게도 저렇게 행동할 만한 이유가 있구나’로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행동을 이해한다는 것은 행동을 허용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오히려 우리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필요한 지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5. 아주 작은 변화를 함께 발견합니다
문제행동은 눈에 잘 띄지만 변화는 아주 작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10분 동안 자리를 이탈했다면 오늘은 5분 만에 돌아왔고,
예전에는 친구를 때렸다면 오늘은 화를 내면서도 손은 대지 않았고,
전에는 사과하지 않던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나마 “미안해”라고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상담교사는 이런 작은 변화를 발견했을 때 담임선생님과 나눌 수 있습니다.
“선생님, 그래도 지난번이랑 비교하면 이 부분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그 한마디가 아이를 갑자기 변화시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문제에 가려져 있던
‘이 아이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감각을 다시 되찾게 해줄 수 있습니다.
상담교사는 아이만 상담하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다 보면
아이 한 명의 변화가 상담실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아이가 상담실에서 한 시간 좋은 경험을 하더라도
다시 돌아가는 교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미 너무 단단하게 굳어 있다면 변화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담임선생님에게
“아이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미 지쳐 있는 선생님에게는
그 말조차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담교사는 아이와 선생님 사이에서 때로는 통역자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선생님이 왜 힘드신지 알아요. 잠시 내려놓으셔도 괜찮아요.”
라고 말해주고,
동시에 아이에게는
“네 행동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그리고 둘 사이에 너무 오래 쌓인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을 조금씩 다시 보여주는 사람.
아이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행동 뒤의 맥락을 설명하고,
작은 변화를 함께 찾아주는 것.
저는 이것 역시 학교 상담에서 상담교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개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담교사인 저도, 담임선생님도
한 아이의 모든 모습을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 아이가 보여준 수많은 모습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 대한 어떤 설명도 너무 빨리 확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라
“지금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
그리고 그 시선을 담임선생님과도 조금씩 나누려고 합니다.
한 명의 어른이라도 아이를
‘아직 달라질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어쩌면 학교에서의 변화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조금 달라지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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